본문 바로가기

영화 해석학

2nd. [청불영화 '버닝'] 98년생 박지영은 한국남자 유아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 영화 ‘버닝’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발로 뛰고 있는 한국남자 유아인, 움직이세요.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거니까요.>


Subject: 유아인의 2중, 3중 고충

 유아인은 고백한다. 자신에게 인생은 수수께끼 같다고. 인생을 수수께끼라고 규정하면, 삶은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지, 관객은 제3자의 입장에서 과연 유아인의 추리가 맞는 지를 주인공과 함께 추리하게 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영화 속에서 유아인이 풀어내야 하는 인생의 숙제는 3가지다. 부모(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풀어내야하는 수수께끼, 사라진 여자친구를 찾아야 하는 수수께끼 (이것은 사라진 여자친구의 마음을 훔치지 못한 남성으로서 자신의 부족함이 어디에서 오는 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로 치환할 수 있다.)와 마지막으로 연상엽이 낸, 비닐하우스 연쇄방화범을 잡아야 하는 수수께끼.
 
 유아인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 필자(이하 고유명사 정씨)에게도 삶은 풀어야할 수수께기였다는 점을 고백한다. 고유명사 정씨를 소개하기 전에 back groud knowledge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고유명사 정씨는 풍족하고 모자람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산업화의 역군 아버지 덕분에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나 허기짐과 허덕임이 없다고 해서 인간 존재의 욕망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고유명사정씨에게는 다른 차원의, 풍요 속의 빈곤 같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있었다.   
 
 이 부족함은 텅빈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이 텅빈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고유명사 정씨는 그 마음을 홀로 쓸쓸이 논밭을 지키는 허수아비에게 감정이입함으로써, 텅 빈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야밤에 꿋꿋이 제 할 일을 다하는 허수아비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정씨에게 전이되었다. 얼마나 여유로웠으면 사물, 어려운 말로 객체에게 자신을 외화함으로서 사물과 스스로를 일치시키려 했을까. 


 정씨의 부모는 베이비 부머 세대로 도농이촌하여 산업화 시절 급성장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자식을 부양하고 그들의 부모를 공양할 수 있었던 cohort였다. 정씨의 부모세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한 세대를 이어 배고픔을 극복하고 “달리 살아보자”고 하였지만, “경제성장에 이바지 하는 것이 곧 애국이다.” 라는 정치 슬로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세대였다.  
 
 정씨는 부모세대의 명암을, 혜택을 수혜받았다. 88올림픽 개막전을 컬러티브이로 시청했다면, “그 이상 뭘 더 바래?” 라고 누군가 물어도 할 말 없는 경제성장의 수혜자였다. 이것이 정씨의 객관적인 조건이다. 
  정씨는 생각한다. 정씨가 부모의 고향집을 오가며 봐온 고속도로에 펼쳐진  풍경들. 누런 벼가 익어가고 그 한복판에서 본분에 충실한 역할을 하는 허수아비. 도회지 사람인 자신이 갖지 못한 생경한 존재에 대한 호기심, 갈망 따위로 인해 허수아비에 끌리게 되었을 것이다. 즉, 다른 존재가 되고 자함.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목마름이 자신을 허수아비로 둔갑시키고 싶게 만들었을 것이다. 
 


<상승직선을 그리는 서울의 상징 N타워(구 남산타워), 아래 사진 중심에 놓인 팔각정은 전통을 잊으면 안된다는 준엄한 경고이지만 이미 초가삼간 태워먹기 

   직전의 한국사회는 노인충, 한남충, 김치녀 등 서로를 비난하며 모종의 붕괴를 격고 있다.>


허수아비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씨가 텅 빈 마음의 허수아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 부족함을 채웠듯이, 버닝의 유아인도 남산타워(지금의 N타워)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한게 아닐까라고. 유아인에게 없는 것. 서울의 발전상을 나타내는 남산타워의 상징을 농군의 자식 유아인은 결코 누려본 적이 없다. 좁은 창문으로 남산타워를 엿볼 수 밖에 없는 유아인의 신세는 서울중심의 세련된 남근을 가질 수 없어, 좌절 속에서 수음하는 불구라고 해석하는 게 맞지 않을까. 
  유아인은 여친을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포르쉐를 모는 수집가 연상엽에게. 

[덧붙여] 한 가지 가증스러운 점은 남산타워의 이름이 누구나를 뜻하는 ‘N’ 타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메가시티 서울에 어울릴만한 naming이지만, 여기에서 서울중심의 혜택에서 소외된 유아인들에게는 꿈 꿀 수도 없어서, 텅 빈 성욕을 자위로 만족해야 한다. 이는 연상엽의 의미체계에세 ‘N’타워가 갖는 의미와 정반대되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유아인에게는 소중하지만 연상엽이 비닐하우스를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