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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석학

1st. Burn after reading의 후속작 영화 '버닝'

 

                         <책을 완독한 기쁨을 표현하는 영화 "번 애프터 리딩"의 브래드 피트, 잊지마세요. 읽고 나서 태우셔야 한다는 걸요.>


감독의 의도를 추리하며 영화를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영화의 각 캐릭터들은 우리사회의 누군가를 대변하는 상징이며 감독은 이 상징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여러 의미를 담는다.

 버닝의 주인공 유아인의 아버지가 최승호 피디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한미FTA가 체결될 당시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에 대해 규제를 풀어 수입을 허용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실책을 지적한 PD수첩을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한미 FTA는 현재 농촌의 궁핍화, 그리고 수출제조업에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FTA는 자유무역이론에 의해 근거 삼아지고 지지되어 온 신자유주의로 이행의 과정이자 결과였다. 협상 결과 실증적인 데이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고 제조업의 수출을 용이하게 하였으므로 농가는 피해를 보았고, 반대편은 이익을 보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개념으로서의 양극화를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협상으로 실현하였다. 

 협상을 통해 손해를 입은 농촌에 대해 정부가 나몰라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은 자유무역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있고 부가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되는 수출제조업의 성장을 통해 사회전체적으로 낙수효과를 누리려는 전략을 짰던 것이다. 
 
 이 전략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잉여는 증가했을 지언 정, 분배는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농가는 피해를 입었다. 최승호 피디는 몰락한 농군을 대표한다. 

 트랙터와 경운기를 이끌고 상경해서 수입개방을 반대했던 농부의 이익을 대한민국 정치권은 대변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이론으로 지지되는 거센 흐름이었고 여기에 올라타 국부를 늘리려는 이해타산이 작동하였기에 협상은 관철되었다. 

 농촌은 선택할 힘과 여론이 없었고, 쇠고기는 수입되었다. FTA는 정부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었고 양극화라는 사회적인 결과를 낳았다. 양극화에 대한 유불리를 사회구성원이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특수한 삶은 단지 농가수입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거센 조류에 의한 삶의 몰락, 여기에서 화(anger)가 비롯된다. 삶에 대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유아인의 아버지 최승호는 금고 안에 단도를 감춤으로서 숨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흔히들 부의 대물림을 지적하고 공정하지 않다고 손가락질 한다. 영화 버닝이 보여주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화(anger)의 대물림’이다. 
 
 몰락한 농군 최승호의 화는 유아인에게 대물림된다. 유아인은 인생은 수수께끼라며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가 아버지에게 있다며 아버지가 밉다고 연상엽에게 고백한다. 유아인은 진지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만 연상엽은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게 취미라며 허세를 부리며 누군가에게는 농작물을 키우는 소중한 재산인 비닐하우스를 쓸모 없는 것으로, 장난감 취급을 한다. 
 이 두 주인공의 차이는 포르쉐와 1톤 트럭만큼 골이 깊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