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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들은 제각각인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공통적으로 한 손에 무언가 들고 있었는데, 햇빛을 반사해서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늘어선 줄 끄트머리에 다가가 은근 슬쩍 무리에 끼어들었다. 서서히 줄이 줄어들고 사무소 가까이 왔을때, 그들이 들고 있는 납작한 은색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하드디스크를 입장권처럼 들고 그 곳에 들어가게끔 되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사무실 한켠에 하드디스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파티션으로 구획된 안쪽에는 누군가 열심히 하드를 뜯어서 암막처리된 자기장 안으로 디스크를 밀어내고 있었다.
"디가우징 할 거 없으세요?"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아.. 아뇨 전 그냥.." 말을 이어가려는데 그는 내게 저쪽으로 가라는 듯 방향을 가리켰다. 
"여기 원하시는 칸에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적으시면 저희가 연락할 겁니다."


 받은 용지는 반으로 접혀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경제 만능당' vs '최상위가치 전복당'
종이를 받아들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직원이 말했다. "일단 즉자적으로 적으시고 저희가 연락 드릴때, 확실히 정하셔서 말씀해주시면 되요." 고민을 거듭하다 앞 칸에 이름을 적고 사무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