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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일 갈 곳 없이 집을 나섰고, 해가 떠 있으면 현기증을 느꼈다.

...낮은 천장과 좁은 문을...

 스스로는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목표물을 향해 나아간다고 같아 보였지만 빨리 걷지 않으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릴까 더욱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었다. 흐르는 시간은 축적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휘청거리는 사이에 손아귀에 쥔 모래가 빠져나간 자리에 희미한 손금만 확인 할 수 있었다. 자연세계 내벽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는 시점이었다.

 잘 닦인 도로, 번쩍이는 간판, 드높은 건물 사이를 성큼성큼 걸었지만 자신과는 어떤 연관도 이어지지 않는 곳이라 느껴져서 적당한 장소를 찾으려면 골목 사이를 파고들어야 했다. 큰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에 올랐다. 산등성이에 뾰족뾰족 하게 난 집들과 집들이 이어져 있는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심하게 달리는 차들과 교차되며 육교 중간에 왔을 때 허리까지 오는 플랑카드를 읽어보려 했지만 글자가 거꾸로 비춰 알아보기 어려웠다.

.....

 '신탁 통치 반대'라는 구호를 외치던 한 무리의 군중 속 사진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었을까. 나는 누군가 반대했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무렵 '그럼 찬성 측 논거는 무엇입니까'하고 누가 또 묻는 것이었다.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누군가 경로를 설정한 이가 있었고 그 경로는 시간을 따라 굳어졌을 거라 짐작했다.

'너 언제와' 조약돌을 꼭 쥐었던 그녀는 단 한 번도 재촉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세계를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열어준 그와의 만남을 더듬어 볼 때, 최종에서 고배를 마시는 이유와 중첩된 원인이 파도처럼 일고 또 일었다.